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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는 대상에 대한 통찰 명상(3)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5-11-08 / 조회수 : 866

일어나는 대상에 대한 통찰 명상(3)

(증일 아함경, 앙굿다라니까야) 

 

올바른 사고를 하기가 어려울 때는 여러분의 모발, 발톱, 손톱, 이빨, 피부 몸을 꼼꼼하게(세밀하게) 점검하도록 하십시오. 머리 염색을 하고 몸에 향수를 뿌리면 우리 몸이 아름다워 보일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넘게 우리 몸을 씻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인위적으로 뿌린 향수 때문에 몸에서 향수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그런 좋은 냄새는 원래 우리 몸에서 나는 좋은 냄새가 아닙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우리는 가장 먼저 씻습니다. 우리 몸이 깨끗하지 않다는 , 본성을 우리가 정확히 이해한다면 우리는 갈애(渴愛) 갈망(渴望) 근절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대상들에 집착하게 것입니다. 눈에 보기 좋고 그리고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안 좋은 , 혐오스러운 것으로 보고 우리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대상에 대해 불만족하는 마음이 일어날 있습니다.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귀중한 다이아몬드 귀걸이 같은 물질적인 대상들을 관찰하려면, 무상(無常) 본질을 생각해야 합니다. 물질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귀중한 보석이 나의 것이라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물건들은 조건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무상합니다. 우리가 어느 물건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기껏해야 100년도 소유할 없습니다. 무상(無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갈애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명상하는 것이 통찰 명상입니다.

번째 방식은 불쾌하고 유쾌하지 못한 대상을 유쾌하고 쾌적한 것으로 관찰하며 사는 것입니다. 눈에 보기에 거슬리고, 소리, 냄새, 그리고 촉감이 좋지 않은 대상이 나타나면 우리는 실망하게 됩니다. 그런 경우, 불쾌한 대상을 유쾌한 것으로 관찰해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연히 싫어하는 사람을 만났을 , 마음관리가 안되면, 우리 마음에 미움이 일어날 겁니다. 사람 때문에 과거에 친구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사업도 실패했다는 생각을 하면 원망과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는 , 우리는 우리의 미움을 줄일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불쾌한 대상이나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만일 싫은 대상을 만나면 상대의 장점을 찾고 상대방에 대한 자애심(慈愛心) 함양시켜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으면, 조건지어인 것들에 대한 4가지 요소(, , , 공기) 생각해보십시오. 화를 내는 것은 결코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자신과 대상의 몸은 가지 요소 중에서 땅의 요소이며 상대나 나는 모두 가지 요소 , , , , 공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가 상대를 싫어해서 얻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싫어하는 사람의 장점을 찾아내고 자애심(慈愛心) 기르고 가지 요소의 본질을 찾는다면 증오심을 근절시킬 있습니다 (Aghataparivinaya 경전에 수록된 내용). 티칸드키 (Tikandki Sutta) 에서도 불쾌한 대상을 유쾌한 대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때때로 기쁨과 불쾌함이 뒤섞여서 대상에 대한 가지 느낌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조건들이 일어날 , 유쾌한 대상에 대해서는 갈애와 욕심이, 불쾌한 대상에 대해서는 실망감이 생깁니다. 그런 경우 유쾌한 느낌은 불쾌한 느낌보다 훨씬 강렬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불쾌하고 유쾌함을 동시에 주는 대상을 관조할 때는 대상을 불쾌한 대상으로 관찰하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가지 혼합된 감정을 주는 대상들을 관찰할 , 때로는 그것들을 불쾌한 대상으로 여길 알아야 합니다. 모든 조건 지어진 것들이 무상하고 그리고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갈애뿐만 아니라 또한 증오심도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경전에서 언급하는 세 번 째 방법입니다.

번째 방식은 불쾌한 대상과 유쾌한 대상을 유쾌하고 즐거운 대상으로 여기며 관찰하는 것입니다. 번째와 번째 방식에서 부처님은 유쾌함과 불쾌함이 혼합되어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상에 대한 감정이 불쾌함과 유쾌함이 뒤섞였을 경우에, 번째 방식에서는 그것을 유쾌한 것으로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증오심뿐만 아니라 갈애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섯 번째 방식은, 불쾌한 대상, 유쾌한 대상에 너무 깊이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이해와 마음챙김으로 동등하게 보는 것입니다. 대상을 좋다 나쁘다고 받아들이면, 우리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갈애가 일어나고 그리고 우리가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미움이 일어날 있습니다. 그러므로 , 갈애, 미움, 그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좋다 싫다는 양쪽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됩니다. 좋고 나쁘다는 관념을 버리고 마음챙김을 하며 바르게 이해를 하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 우뻬까 (Upekkha)- 무관심은 사링구뻬까(Chalangupekkha,여섯 가지 무관심)에 관해 언급되어 있는데, 마음을 여섯 가지 대상에 고요하고 평온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비록 눈이 호감 가는 대상을 바라볼지라도 그것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아라한은 대상의 본질에 대해 마음챙김을 하며 올바르게 이해합니다.

아라한은 호감 가는 대상을 탐하지 않으며, 불쾌한 대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바른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방식입니다. 불쾌함이나 유쾌한 생각이 없는 상태를 우리는 평온함 혹은 평정한 상태라는 의미로 타라메짜따타(Tatramejjhattata)”라고 부릅니다.

것은 다른 사람들이 칭찬을 하든 비난을 하든 상관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마음이 되면 우리는 칭찬이나 비난을 마치 먼지와 같이 여기고 결코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며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을 행하고 결코 좋고 나쁘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다섯 번째 방식의 핵심은 대상이 무엇이든 갈애와 증오, 망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실체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섯 번째 방식을 통애 어떤 사람들이 갈애와 증오와 망상을 근절시킬 있을까요? 그것은 아따카타 (Atthakatha) 에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로 통찰 명상을 꾸준히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은 갈애, 증오 망상을 피할 있습니다.

두 번째로 경전을 꾸준히 분석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수행하면서 말씀을 철저하게 따르는 사람은 갈애와 증오와 망상을 근절시킬 있습니다. 우리는 눈을 통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대상들을 봅니다. 만일 눈을 뜨고 대상들에 호감을 가지면 (몸으로) 소리를 듣고, 냄새도 맡고, 맛보며 만집니다. 그러나 대상이 나타날 때마다 경전을 암송하거나 마음챙김으로 분석한다면 그는 대상들로부터 벗어날 있습니다.

번째에서 다섯 번째의 수다원(預流), 사다함(一來), 아나가미(不還) 성취한 사람은 그것들을 피할 있습니다. 여섯 아라한(모든 번뇌를 여읜 사람,阿羅漢) 경지에 오르면 모든 대상에 대해 평정함으로 있습니다. 여섯 가지 무관심의 요소들 모두를 뛰어넘을 있는 사람은 아라한 뿐입니다. 그러나 여기 우뻬까 경전 (Upekkha Sutta )에서 무관심은 아라한의 Chalangupekkha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아라한(阿羅漢) 증득할 있는 여섯 가지 무관심을 부처님께서 여기서 언급하신 이유는 승려나 일반인들도 위빠사나 명상을 통해 아라한과를 증득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법을 따르고 덕행(德行) 하는 여러분 모두는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대상들을 관찰하는 명상을 열심히 하여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갈애, 증오심, 그리고 망상(妄想)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를 줄이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마음 챙김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모두, 부처님께서 알려주신 통찰(洞察) 수행을 열심히 해서 번뇌를 근절시키고 깨달음을 하루 빨리 증득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마음과 물질에 대한 명상을 하는 것은 대념처경(Mahasatipatthana Sutta)에서 언급한 대상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법구경(Dhammapada-35)마음은 간사하고 변덕스러운 것이어서 허황한 것 쫓아 헤매는 마음을 붙잡아 두기는 어렵다. 이러한 마음을 잘 다스린다면 많은 행복을 누리게 되며 기쁨의 원천이 된다.”라는 마음에 관한 얘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통제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통찰 명상을 열심히 하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명상을 할 때 건전한 통찰행위를 할 수 있게 됩니다(위빠사나 쿠살라,vipassana-kusala). 건전한 통찰 행위는 일시적으로 번뇌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마음과 물질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면 번뇌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하시 큰스님께서는 수행자는 불을 지피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옛적에, 사람들이 불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들은 불을 지피기 위해서 대나무나 혹은 어떤 나무들을 지속적으로 문질러야만 했습니다. 열심히 문지르지 않으면 불을 피울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수행자는 언제나 마음 챙김을 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수행에 정진을 할수록 집중이 더 잘되며 더 오랫동안 장애를 제거시킬 수 있습니다(열반, Nivarana). 장애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지속적으로 수행을 해서 도()와 과()를 성취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잘 다스리면 행복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마음을 조금씩 다스리는 훈련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수행자는 어느 형상을 볼 때 그것을 단지으로서 관찰해야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남자나 여자로 형상을 보게 되면 그 존재를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관찰을 하는 동안 수행자는 잠시 동안 사견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일 년 전과 같이 변함없이 젊어 보이고 아름답고 잘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기분이 좋고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세월이 흐르면서 지속적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벽에 돌을 던질 때, 돌은 돌이며 벽은 벽입니다. 돌과 벽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그처럼 열심히 수행을 하게 되면 수행자는 눈으로 보이는 것은 물질이며 보는 의식은 마음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게 됩니다. 마음과 물질 외에 남자와 여자 혹은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만일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사견(邪見)을 제거시키면 윤회(輪廻)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형상을 관찰함에 있어 눈의 문을 잘 단속해야 될 것입니다.

잠깐, 문을 잘 단속하지 못한 비구니에 대한 스리랑카의 이야기를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불도에 따르면, 사찰에 머무는 비구와 비구니는 한 달에 두 번 사찰 내 집회 장소에 모여서 포살(砲薩)을 행했는데 이 때 자격을 갖춘 스승 스님과 함께 보름날, 그믐날 모여서 계율(戒律) 등을 암송하고 반성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구니들이 포살(砲薩)을 준수하기 위한 장소를 이동하던 중, 한 비구니가 그 건물 밖에 서 있는 멋진 남성 형상(形相)의 동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고 잘 생긴 그 동상을 바라보는 순간 그녀는 동상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동상을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상상하며 그 얼굴에 미소를 짓고 별의 별 행동을 다 했습니다. 하지만 조각상은 조각상일 뿐 반응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때 비구니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점점 더 비정상적이고, 탐욕적이고 감각적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 비구니의 감각적 욕구가 너무 강해져서 밖에 선 채로 죽고 말았습니다. 포살(砲薩)을 마친 다른 비구니들이 밖에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부르면서 그녀의 몸에 손을 대자 그녀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형상에 대한 명상 수행의 이로운 점>

아띡까-깜마따나(혐오스런 해골 명상, Atthika-kammatthana)을 오래 한 한 승려가 있었습니다. 아띠까( Atthika)명상은 죽은 후 2~3일이 지나면 시신은 상하게 되어 살이 녹아 결국 해골만 남게 되어 이러한 해골로 인해 유쾌할 것이 없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시신이 해골이 될 때까지 관찰 수행을 하는데 이는 시신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몸에 관해서도 집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하 띳사 장로 비구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스님이 길 가 나무 아래에 앉아 있을 때, 전혀 안면이 없는 한 여성이 그를 보고 웃으며 지나쳤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게 실망해서 스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은 같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지나치는 여성의 이빨을 보고 그 스님은 백골’ ‘백골하며 관찰하여 선정(Jhana,禪定)을 성취했습니다. 집중(Jhana, 禪定)수행을 통해 그는 무상(無常), 고통(苦痛파일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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