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

기본 게시판 내용보기
삶과 그 고뇌에 대하여 (1)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5-11-08 / 조회수 : 1024

삶과 그 고뇌에 대하여 (1)

부처님은 노인을 돌보는 일은 큰 공덕을 쌓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문화적 유산이라고 가르칩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존경을 받던 부처님과 보살들 역시 노인들을 돌보았습니다. 노인을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윤리이며 문명인의 행위인 것입니다.

따와띰사(Tavatimsa, 天上 혹은 33천신의 영역)의 신(사까, sakka)들의 왕은 자신이 행한 것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그리고 일곱 가지 맹세를 삭까 사뮤타 (Sakka samyutta)에 명확히 설명했습니다.

1)살아있는 한, 나는 부모님을 봉양한다. 2) 살아 있는 한, 나는 어른들을 존경하겠다. 3) 살아있는 한, 나는 공손히 대하겠다. 4) 살아있는 한 불손(不敬)한 말을 하지 않겠다. 5) 살아있는 한, 인색하지 않고, 인자하며 열린 마음으로 살 것이고, 그리고 흔쾌히 자선 단체에 기부하며 나눔의 삶을 실천하겠다. 6) 살아 있는 한, 정직하게 살겠다. 7) 살아있는 한, 결코 화를 내지 않도록 할 것이며, 혹시 마음속으로 화가 일어나더라도 잘 다스리겠다.

이들 중에서 어른을 부양하는 것(워우따 빠사이, Vuddhapacayi)은 가장 대단한 선업이었으며 그 선업으로 그는 따와띰사에서 신들의 왕이 되었다.

선업(善業)에대해부처님은현명하고부처님의가르침을잘이해한사람은어른을존경하고잘부양하며그러한사람은이생에서칭송을받고좋은세상에다시태어난다고분명히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적어도문명인이라면누구나반드시이런선업의행을반드시실천해야한다고하셨습니다.

동족(同族)은친지혹은가족이라고말할수있습니다. 그러므로누구나젊은사람들은노인들을존경하고부양해야합니다. 특히자신의부모를부양하는것은가치있는일입니다. 부양할때는자애심과친절한마음을가져야합니다. 자애(慈愛)와연민(), 순수하고고결한마음은선업(善業)의행위입니다. 이런마음이좋은미래와좋은다음생()을가지고오는것입니다. 우리는부모님을돌보고부양하는것으로행복해질수있습니다.

한편, 부모나부양을받는사람들은마음을그들의삶에쏟도록노력해야합니다. 스스로의삶을각각십년단위로나누어서몸과마음의변화의상태를분석할필요가있습니다.

태어나서 10년은 느리고 허약한 십년(manda-dasaka)입니다. 이 때는 신체적 육체적으로 매우 허약하므로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11세부터 20세까지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강인해 집니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놀고 싶어 하고 삶을 즐기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이 연령대를 놀고 즐기는 십년(khitta-dasaka)이라고 합니다. 21세부터 30세의 나이가 되면, 신체가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이 때 남녀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맞게 되므로 이 때를 아름다운 10(vanna-dasaka)이라고 합니다. 31세에서 40세에는 힘이 세집니다. 그래서 이 때를 힘의 10(bala-dasaka)이라고 합니다. 41세부터 50세는 지혜와 지식이 늘어나는 시기입니다. 이 때 사람들은 사려 깊게 말하고 지적으로 사유합니다. 이 시기를 지적 능력의 10(panna-dasaka) 이라고 합니다. 지적 수준이 꾸준히 높아져서 50세까지는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51세에서 60세에 지적 능력은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할 수 있지만, 더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때를 쇠퇴의 십년(hani-dasaka)이라고 합니다. 비록 상태가 쇠퇴하더라도 이 때는 여전히 힘을 갖고 있어서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때까지는 아직 노인은 아닙니다. 61세부터 70세는 기울어지는10(pabbhara-dasaka)입니다. 이 때 몸은 힘이 약해져서 똑바로 가누기가 힘들어져서 굽어지게 됩니다. 71세에서 80세에는 몸이 구부정해집니다. 그래서 몸이 구부러지는 10(vanka-dasaka)이라고 합니다. 이 때 몸의 상태는 아주 악화됩니다. 81세에서 90세는 감정적 통제가 어렵고 기억력과 판단력이 흐려지는10년입니다. 이 때는 이런 저런 것을 잊어버리게 되고 마음 상태 역시 상쾌하지 못하며 망상(妄想)을 갖게 됩니다. 91세에서 100세때는 침상에 눕는 10년입니다. 이 때에도 잘 걸을 수 있고 잘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무척 건강하고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청정도론은 이와 같이 인간의 수명을 백 년을 기준으로 삼아서 십 년씩 열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것은 몸이 쇠약해지는 상황을 관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진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때로는 그것을 숨깁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병명을 찾기 위해서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 받는 일을 소홀히 합니다. 심지어 알고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검사는 존재의 본질(本質)을 아는 것이지 우울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실체(實體)를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리를 알게 되면 중요한 것을 얻게 됩니다.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인간의 본성(本性)은 조금씩 쇠약해집니다. 우리의 본성(本性)을 모르는 체 살아가는 사람은 올바른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삶에 있어서 손실의 의미는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도록 정진(精進)해야 할 것입니다.

원인과 조건을 아는 것은 지식을 관조하는 것입니다(Sammassana-nana). 십 년 단위로 우리의 삶을 관조(觀照)하면, 몸과 마음이 나누어지고 모든 것들은 하나씩 하나씩 사라집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과정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지식을 관조하는 것입니다. 현재뿐만 아니라 평생을 그렇게 관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만물이 무상(無常)함을 분명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젊음, 외모, 힘 등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집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의 과정 속에 있는 한, 무엇을 얻었고 잃어왔는지를 반드시 관조(觀照)해야 할 것입니다

파일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다음글 : 일요법회 _지금 현재의 행복 _청원스님
이전글 : 일어나는 대상에 대한 통찰 명상(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