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

기본 게시판 내용보기
초전법륜경2010/03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0-03-10 / 조회수 : 2648

초전법륜경

부처님께서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시고 난후 7주야 동안 보리수 근처에서 해탈의 행복을 즐기셨다. 그런 후 ‘이 세상에서 스승 없이 지내는 것은 좋지 않다. 스승을 찾으리라’ 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이 세계를 반조해보니 당신보다 지계, 선정, 지혜의 공덕이 뛰어난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내가 깨달은 법을 스승으로 삼고 법을 의지하고 법을 설하리라!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다. 귀있는 자는 들으라!’ 라고 대 연민심과 범천의 권청으로 전법선언을 하시게 되었다.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난후 법을 가르치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니다. 깨달으신 법이 미묘하고 가르치기 어려우므로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적합할까를 숙고하셨다. 즉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까를 숙고하셨던 것이지 치료하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 이 심오한 법을 누구에게 설할 것인가? 숙고해보니 두 스승이 떠올랐지만 그 분들은 이미 돌아가셔 몸이 없는 무색계천에 태어나셨다. 그 다음으로 고행을 함께 했던 다섯 고행자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들이 있는 녹야원으로 걸어가셨다.

녹야원은 모든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난후 초전 법륜을 설하신 곳이다. 우리의 붓다께서 고행을 포기하시고 중도를 행하실 때 다섯 고행자들은 고행으로도 성도를 못하셨는데 고행을 포기하고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고타마가 타락했다며 붓다를 떠났던 것이다.

그들은 저 멀리서 붓다가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우리 인사 하지 말자’ ‘발우를 받지 말자!’ ‘물을 내 드리지 말자’ 라고 말했지만 무상정등정각을 깨달으신 붓다의 자비 광명과 위신력에 인사를 하고 발우를 건네받고 물을 내드리고 경의를 표했다.

그들이 붓다를 ‘도반이여!(아우소)’ 라고 부르자 붓다께서 ‘나를 도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3번이나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여전히 ‘도반이여’라고 부르므로 ‘내가 언제 도반이라 부르지 말라 했는가?’ 라고 물으시니 그들이 ‘존자시여(반떼)’라고 불렀다. 이리하여 붓다께서 오비구에게 초전법륜경을 설하시게 되었다.

- 중도 -

------------------------------------

1)부처님의 최초의 설법을 담고 있는 가르침이다. 『율장』12,『맛지마 니까야』141,『위방가』,『청정도론』,『상윳다 니까야』56상응 제11경 등에 나타나 있다. 여기서 인용한 글은 각묵스님께서 쓰신『앙굿다라 니까야』를 참조 했다.

2)모든 부처님께서는 범천의 권청이 있고난 후 법을 가르쳤다. 그 당시 일반 바라문들이 존경하는 대범천의 권청에 의해서 법을 설하신다면 어떤 비난도 받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붓다께 무색계 3선정을 가르친 알라라 깔라마는 7일전 죽어 6만 대겁의 수명을 가진 몸이 없는 무색계 3선천에 태어나셨고 무색계 4선정을 가르친 우다까 라마뿟다는 붓다께서 성도하시기 하루 전날 죽어 수명이 8만 4천 대겁이나 되는 무색계 4선천에 나셨다. 이 사실을 먼저 범천이 알려 주었고 붓다께서 확인 하시고는 ‘크게 잃었다’고 하셨다. 왜냐 하면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은 부처님과 벽지불은 제외하고는 스승을 필요로 한다. 그분들이 천상의 수명을 마치고 인간계에 다시 올 땐 부처님이 안 계시는 시기이고 그때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다시 4악처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4)모든 부처님께서는 녹야원에서 초전법륜을 설하실 때 신통으로 날아가셨다. 그러나 우리의 붓다께서는 중간 지점에 있는 우빠까를 제도하기 위해 걸어가셨다.

5)고행하실 때 처음에는 저절로 떨어진 과일만 드셨다. 씹는 음식을 드시지 않으셨다. 숨을 멈추기도 했고 인간으로써 할 수 있는 극단적인 고행을 하셨다. 마지막엔 하루에 콩 반쪽을 드시다가 단식까지 하셨다. 앉은 자리에서 쓰러지면 사람들이 ‘고따마가 죽었다. 아니 안 죽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항상 마라가 방해 했다. 왜 힘들게 수행하는가? 차라리 전륜성왕이 되십시오. 라고.

6)오비구五比丘는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하시기 전에 고행을 하실 때부터 가까이에서 따라다니던 석가족 출신의 바라문 수행자들이다. 오비구의 이름은 꼰단냐 또는 안냐꼰단냐, 밧디야, 왑빠, 마하나마, 앗사지이다.

 

“비구들이여, 출가자가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저열하고 촌스럽고 세속적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과,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여래는 중도中道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중도는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 8정도 -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중도인가? 그것은 여덟 가지 바른 길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 고성제 -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도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대상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다. 좋아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 (오취온五趣蘊)자체가 괴로움이다.”

- 집성제 -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이다.”

- 멸성제 -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러한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이다.”

- 도성제 -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 고성제를 통찰하심 -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통찰지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통찰지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 집성제를 통찰하심 -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통찰지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는 버려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통찰지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는 버려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통찰지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 멸성제를 통찰하심 -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통찰지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는 실현되어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통찰지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는 실현되었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통찰지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 도성제를 통찰하심 -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통찰지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는 닦아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통찰지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는 닦아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통찰지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내가 이와 같이 세 가지 양상과 열두 가지 형태를 갖추어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하게 되지 못하였다면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스스로 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내가 이와 같이 세 가지 양상과 열두 가지 형태를 갖추어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했다고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스스로 천명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는 지智와 견見이 일어났다.”

붓다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오비구는 마음이 흡족해져서 붓다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이 상세한 설명이 설해졌을 때 꼰단냐 존자에게는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건 모두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集法卽滅法).’라는 티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法眼)이 생겼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 법륜을 굴리셨을 때 땅의 신들이 외쳤다.

“붓다께서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이러한 위없는 법륜을 굴리셨나니,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이것을 멈추게 할 수 없도다,”라고.

땅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사대왕천의 신들이…삼십삼천의 신들이…야마천의 신들이…도솔천의 신들이…화락천의 신들이…타화자재천의 신들이…범신천의 신들이 외쳤다.

“붓다께서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이러한 위없는 법륜을 굴리셨나니,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이것을 멈추게 할 수 없도다,”라고.

-----------------------------------------

7)“‘세 가지 양상’이란 ① 진리에 대한 지혜; 사성제 각각에 대한 여실한 지혜 ② 역할에 대한 지혜; 철저히 알아야 하고 버려야 하고 실현해야 하고 닦아야 하는 사성제 각각에 대해서 행해져야 하는 역할을 아는 지혜 ③ 성취된 지혜; 이러한 역할이 성취된 상태를 아는 지혜를 말한다. ‘열두 가지 형태’란 사성제 각각에 대해서 위의 세 가지 지혜를 곱하면 12가지 형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8)“‘법륜’에는 꿰뚫음의 지혜와 가르침의 지혜가 있다. 사성제에 대해서 생겨난 열두 가지 형태의 꿰뚫음의 지혜와 녹야원에 앉으셔서 열두 가지 형태의 진리를 가르치신 것에 의해서 굴려진 가르침의 지혜, 이 둘을 법륜이라고 한다. 이 둘은 십력을 갖추신 부처님의 가슴에서 굴려지는 지혜이다. 안냐꼰단냐장로와 18꼬띠(1꼬띠는 천만을 뜻함)의 범천들이 수다원이 확립되기 전까지는 붓다께서 법륜을 ‘굴리시는’ 것이었고, 확립되었을 때는 법륜이 ‘굴려진’ 것이다. 이것을 두고 ‘붓다께서 법륜을 굴리셨을 때’ 라고 한 것이다.”

이처럼 그 찰나, 그 짧은 시간, 그 순간에 범천의 세상에 이르기까지 그 소리는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만 개의 세계는 흔들렸고 강하게 흔들렸고 요동쳤으며, 측량할 수 없이 광휘로운 빛이 나타났나니 그것은 신들의 광채를 능가하였다.

그때 붓다께서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라고 말씀하셨고 이렇게 해서 꼰단냐 존자는 안냐꼰단냐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 수많은 천인들이 법을 얻었다.

이리하여 꼰단냐가 출가하고 싶다고 붓다께 말씀드렸다.

붓다께서 ‘에히(오라) 비구(비구여)!’라고 받아들이시자 머리는 저절로 깎아졌으며 8가지 비구의 필수품이 갖추어졌다.

그날 나머지 네 분도 ‘에히 비구’가 되었다. 둘째 날 왑빠 존자가 수다원이 되었다. 셋째 날 수다원이 된 두 비구는 탁발을 가고 나머지 세 사람은 계속에서 붓다께 4성제와 8정도의 법문을 듣고 밧디야 존자가 법을 얻었다. 넷째 날은 수다원이 된 세 비구가 탁발을 나갔고 두 비구는 여전히 법을 들었고 마하나마 존자가 법을 얻었다. 마지막 날엔 앗사지 존자가 법을 얻었다. 이렇게 두, 세 비구가 탁발을 나갔고 나머지 비구들은 법을 들었다. 이들이 듣고 바로 깨달은 것은 아니다. 8정도‧ 위빠사나를 수행했기 때문에 깨달았던 것이다.

다섯 비구가 모두 수다원에 도달하자 붓다께서는 그들이 차츰 아라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무아경을 설하셨다.  (다음호에 무아경에 관하여 싣겠습니다.)

----------------------------------------------

9)‘안냐’는 구경의 지혜; 아라한 과를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꼰단냐 존자가 수다원을 얻은 것을 두고 이렇게 표현하고 계신다.

10)‘오라, 비구여!’라는 의미이다. 비구가 되기 위한 특별한 수계식을 갖지 않는 ‘에히 비구’가 되기 위해서는 전생에 발우, 가사 등을 보시한 공덕이 있어야 한다. 저절로 깎아진 머리는 다시는 길지 않기 때문에 다시 삭발할 필요가 없고 법납 60세‧ 세납80세의 대 장로의 모습으로 갖추어진다. 그래서 이때를 표현하는 그림을 보면 한 비구는 늙은 대 장로의 모습인데 다른 네 비구는 어린 스님인 모습을 볼 수가 있다.

11)삼의(세 종류의 가사; 하의와 길고 약간 짧은 상의), 허리띠, 바늘‧ 실, 칼, 발우, 녹낭; 물 그러게

파일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다음글 : 無我經(무아경)10/04
이전글 : 진경스님 동영상법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