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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행복1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0-09-08 / 조회수 : 1110

순수와 행복

미극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이야기 속에 천국에 간 한 남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천국에 도착하여 날개 한 쌍과 하프를 받았습니다. 그는 며칠 동안 이리저리 움직 이기 위하여 그 날개를 사용하였고천상의 음악을 기 위하여 그 하프의 줄을 뜯었습니다. 가다가 다 수월한 것은 아니어서 상당히 었는데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침내 그는 천국서는 사실상 어디를 가기 위해 날개가 굳이 필요치 않으며 악의 경우에도 그저

듣고 싶다고만 마음으로 바라면 천상의 악사나타나 음들려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애써 걸었던 날개와 하프를 내려놓고 홀가분히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우리도 때로 순수와 행복에 대한 선입관에 사로 잡혀 자신을 속박하고 제한합니다. 행복이 마치 어떤 물건을 갖는다거나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 데서 찾아질 것 같은 쓸데 없고 헛된 생각으로 스스로에게 짐을 지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한된 시야를 밀쳐낼 때 우리에게는 한결 깊은 기쁨의 체험이 열리게 됩니다.

행복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각각의 행복은 얼마나 순수한 단계에 있는가에 따라서 정해집니다. 감각적 쾌락은 그 첫 번째에 속하는 행복으로 이를 즐기는 일은 가능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며기분 좋은 냄새와 맛을 끼며,몸 안에서 일어나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같은 감각적 쾌락의 순간들을 많이 누리며,비록 그것들이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 안에 어느 정도의 기쁨과 빛 그리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보다 더 높은 정도의 감각적인 행복에 대해서는,우주론상의 세계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그곳에선 존재들이 아무런 고통도 불쾌함도 없이 환히 빛나는 몸으로 되어 있으며,쾌락의 즐거움은 감각적인 기쁨과 더불어 자라나 온갖 종류의 갈망을 채웁니다. 궁전들은 보석으로 만들어져 있고,천상의 악사들이 음률을 타고,성스런 요정들과 거룩한 요기(Yogi) 들 까지 있습니다. 미래에 올 부처님의 미륵불은 지금 바로 그러한 극락세계에 살고 계시면서 그곳의 많은 존재들에게 다르마(법)치고 계신다고 합다. 러운 복은 주 지고한 행복합니다. 이러한 감각적 쾌락의 행복에 이르는 길은 순수한 행동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이것이 제 1단계의 순화 과정입니다. 행동의 순수함이란 자비를 실천하는 것을 말하며,왕과도 같은 베품을 의는 도덕적 계율의 실천,즉 욕심과 분와 망상을 자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행동의 순수함이야말로 간계뿐 만 니라 천상계에서도 온갖 종류의 감각적 행복을 향할 수 있는 근본이

됩니다. 천상의 행복보다 더 높은 종류의 행복도 있습니다. 그 것은 집중의 행복과 축복입니다. 한 곳에 모아지는 첨예한 힘을 강하게 발달시켜 온 마음은 감각 너머의 그것을 초월한 황홀경을 누립니다.

이 황홀경은 덧없이 사라지는 감각적 쾌락을 훨씬 능가하는 경지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감각적 대상들로부터 벗어나 하나의 대상에 완전히 몰두한 마음입니다. 이것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불현 듯 사라져 버리곤 하는 잡다한 여러 감각 대상들을 즐기는 것 보다 훨씬 지속적인 축복입니다.

집중력의 힘을 통해 계발될 수 있는 마음 상태에 몇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범천(梵天)의 거처’니 ‘성스러운 마음가짐’이라고 일컫습니다. 이렇게 일컫는 까닭은 그것들이 바로 범천의 세계에 사는 존재들이 지난 마음의 자질들이기 때문입니다. 범천세계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경지 중에 가장 높고 가장 고양된 영 역입니다.

성스러운 거처의 첫 번보편적인 자애()입니다. 이 사랑은 애착이나 소유욕에서 나온 어느 특정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모든 곳의 모든 존재들의 행복과 평화,그리고 기쁨을 바라는 마음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사랑입니다. 이 같은 단계의 집중에 도달한 마음이라면 사랑을 어느 방향으로나 골고루 영원히투사할 수 있는 능력 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질들 가운데 두 번째는 모든 존재의 고통에 대한 연민의 마음(悲)입니다. 다른 이들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 느끼며 걱정하는 마음입니다.

세 번째의 성스러운 거처는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喜)으로서,다이의 행복을 함께 나누며 기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이가 행한걸 보고 함께 기쁨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아마 시기나 질투 또는 경쟁심과 같은 것과 대조되는 상태일 것입니다. 남의 기쁨에서 역시 즐거움을 얻는 마음이란 가볍고 환한빛을 뿜는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에 속하는 자질은 평온함(搖)입니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마음의 변동,기쁨과 슬픔,변덕에 혼돈되거나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마음의 균형입니다.늘 균형이 잡혀있는 고른 마음을 말합니다. 끝없는 사랑과 연민,더불어 기뻐함과 평온함의 행복은 마음이 한 곳에 잘 모아지게 될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행동의 순수함이 우리의 행위들과 관련되어 있듯이 마음의 순수함은 집중의 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깊은 집중의 범천의 세계가 기쁨보다 더 기쁨있습니다. 이것은 위빠사나의 행복통찰의 행복입니다. 이는 또렷이 보는 마음사물의 본질을 깊이 꿰뚫는 마음으로,일어났다 스러져가는 현상들을 아주 분명히 체험합니다. 위빠사나의 행복은 행복들 보다 훨씬 높고 초월적인 것인데바로 철한 야의 또렷함 속에서 자유를 맛볼 수 있기 때입니. 이은 그저 감각적 즐거움에 빠져드는 것아니고,그러고 명상서 맛보는 황홀경이나 집중된 마음으로 감에 빠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마음이 광채를 발하게 되는,의식이 투명하게 빛나기 시작하는 순수한 직관의 기쁨입니다. 이것은 마치 수정 술잔을 맑게게 빛나기 시작할 때까지 갈고 닦는 것과 같습니다. 주의력의 연습,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마음은 그와 똑같은 광휘를 얻을 수가 있으며,깊은 통찰에서 비롯되는 예사롭지 않은 탁월한행복감을 즐길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순수함의 한 단계가 있습니다. 바로 견해의 순수라고 일컫는 것으로 위빠사나의 행복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견해의 순수함이란 자아에 대한 여러 견해나 개념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의미합니다. 결국 우리라는 존재는 마음과 몸이 서서히 펼지는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되어가는과정에 있을 뿐입니다. 붓다께서 언젠가 일체(-切)’ 라고 것에 대해 짤막하게 말씀을 나누셨던 적이 있습니다. 이일컬‘일하는 이유는 부처께서 그 모든 것을 여로 묘사하셨기 때문입다. ‘눈과 시각적 대상,171 다음 호에 계속 -통찰의 체험- 발췌 J. Gold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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