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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디빵까라 세얄레이 법문 자료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3-05-12 / 조회수 : 1251

디빵까라 새얄레이 법문 2

지나 김은미 (2013/5/8)

 

감사합니다.

편하게 앉으세요. 오늘은 집중수행 시작한지 삼 일째입니다. 그 동안 수행의 진전이 많이 있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명상하시는 동안 제가 뒤에 앉아서 자애의 마음을 보내곤 했습니다. 제가 보내는 자애의 마음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분들이 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붓다께서도 자애명상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해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잠이 많이 왔다고 하더라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니까요. 새벽 네 시에 일어나는 것은 여러분에게 새로운 경험일 것이고, 이 곳 수행처에 오기 전에 아마도 피곤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제가 인터뷰를 하면서 많이 기뻤습니다. 많은 분들이 니밋따를 보았다고 했으며,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니밋따를 본 것에 저는 놀랐습니다. 며칠이 지나면 더 많은 분들이 니밋따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정진하면 며칠 내로 니밋따가 안정되어 좋은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선정에 들게 될 것입니다.

지난 법문에서는 40개의 명상 주제를 말씀드렸습니다. 몇 분께서는 아마 헷갈리셨던 것 같습니다. 40가지 명상 주제는 지금 당장 수행하시도록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수행자들께서는 아나빠나사티를 수행하시길 바랍니다. 아나빠나사티는 많은 수행자들에게 적합한 명상 주제입니다. 40가지 명상 주제를 말씀드린 이유는, 아나빠나사티로 수행하다가 집중이 잘 되지 않고 편하지 않을 때 다른 명상 주제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0가지 명상 주제를 붓다께서 설하신 이유도 선정을 개발하기 위함입니다. 아라한과를 성취하신 이후 붓다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근기를 보시고 적합한 명상 주제를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죄송하게도 저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여기 계신 수행자들께서 아나빠나사티를 수행해 보시고 잘 안 되면 말씀해 주시면 다른 명상 주제를 드리겠습니다.

붓다의 상수제자였던 사리불존자도 사람들의 근기를 바로 알 수는 없었습니다. 오로지 붓다께서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붓다께서 이렇게 특별한 능력을 가졌던 이유는 수많은 전생 동안 쌓았던 바라밀 (parami, 공덕)과 관련 있습니다. 석가모니 붓다의 전생에 디빵까라 붓다를 뵈었을 때, 언젠가는 붓다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았습니다. 그 후로도 석가모니 붓다는 많은 생 동안 공덕을 짓는 보살의 삶을 살았습니다.

상좌불교 (테라와다)에는 열 가지의 공덕이 있고, 한국 등 대승불교에는 여섯 가지의 공덕 (육바라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오늘 제가 열 가지 공덕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다 말씀 드린 후에는 질문을 할 테니 꼭 기억하세요!

 

            보시 (dana)

            지계 (sila)

            출리 (renunciation)

            지혜 (panna)

            정진 (viriya)

            정어 (saucha)

            인욕

            자애 (metta)

            원력 (adhidana)

            평온심 (upekkha)

 

입니다. 이러한 10가지 바라밀은 매일 수행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축생의 몸일 때에도 수행해야 하지요.

바라밀을 짓는데도 세 단계가 있습니다. 보시를 예로 들어 보면 첫 번째 단계는 옷이건 음식이건 자기의 소유물을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자신의 몸을 주는 것입니다. 눈이건, 팔이건, 자식이건, 부인이건 남을 위해 아낌없이 줍니다. 세 번째 단계는 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원한다면 그것까지도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이 어느 단계인지 확인해 볼 수 있겠지요. 누군가 여러분의 남편을 데려가고자 한다면 행복하게 내줄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흔쾌히 남편까지 내줄 수 있을 때 보시의 공덕을 짓는 것입니다.

보시에 세 단계가 있는 것처럼 열 가지 바라밀에 각각 세 단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총 30가지의 공덕행이 있게 됩니다. 일반적인 수준에서부터 고차원 정진 바라밀이 있고, 자애에도 일반적인 수준부터 고차원까지 있게 됩니다.

붓다께서는 전생에 많은 공덕행을 지었기에 어떠한 제자들도 이룰 수 없을 만큼 수승한 지혜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많은 공덕행을 지어서 성숙하게 되면 지혜가 익어집니다. 붓다의 마지막 생은 북인도에서 왕족으로 태어나신 것이지요. 29세까지 왕자로서 살다가 어느 날 네 가지 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문유관상). 그 중 첫 번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인을 본 것입니다. 노인을 보게 된 붓다는 숙고를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나도 노인이 되겠구나’. 그러면서 붓다께서는 모든 것을 내려 놓게 되었습니다.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집착하려 하지요. 늙는다는 것도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젊어 보이고 싶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지요. 젊을 때는 아름다움을 많이 생각하고 외모를 가꾸는데 시간을 많이 씁니다. 그러다가 나이 들어 50세 이상이 되면 외모에 대해 거의 신경을 안 쓰지요. 사람들에게서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도 속으로는 난 별로 예쁘지도 않고 관심도 없어라고 생각이 들지요. 그런가요? 그렇게 되면 마음이 편해 집니다. 무엇을 입을지, 머리모양은 어떻게 할지에 대해 신경을 덜 쓰면 더 자유롭고 편해 지지요. 점점 더 나이 들어서 60, 70이 넘으면 아름다움 보다는 건강만이 중요하게 됩니다. 그렇지요?

이처럼 아름다움에 집착하지 않게 되면 아주 편하고 자유롭게 되며, 자기자신에 대한 집착도 많이 내려놓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집이나 돈 등 다른 소유물도 그렇습니다. 좋은 집을 갖고 싶으면 일을 더 해야 하지요.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하면 더 편하고 자유롭게 됩니다. 돈은 욕망이기 때문에 돈을 원하면 일을 더 많이 해야 하고,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 듭니다. 그런데 붓다께서는 보살이었을 때 노인을 보고서, 자연스레 일어나고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붓다께서 보신 두 번째 상은 병자였고, 세 번째 상은 시신이었습니다. 붓다께서 시신을 보았을 때 나도 어느 날엔가는 죽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붓다께서는 수 많은 생 동안 공덕행을 지어왔으므로 지혜가 성숙하였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보았을 때 나의 인생을 이렇게 허비할 수가 없구나. 세속적인 즐거움은 필요치 않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행하는 비구를 보았을 때, 붓다께서는 수행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 날 밤 붓다의 아들 라훌라가 태어났지요. 그럼에도 붓다께서는 출가하여 숲 속으로 들어가 수행하였습니다. 숲 속에서 육 년간 고행하셔서 붓다께서는 해골처럼 마르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거의 드시지 않고 명상만을 지속하는 과도한 정진을 하신 것이지요. 음식을 거의 드시지 않으니, 필요한 영양소 섭취를 못하여 신체가 매우 허약해 졌습니다. 육 년간의 고행 후 붓다께서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정진하였는데도 깨닫지 못한 것은 무언가 잘 못되었구나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 때까지는 붓다께서 고행을 하신 것이지요. 신체가 허약해 기운이 전혀 없으니 마음도 평화로울 수 없었지요.

그리하여 붓다께서는 중도 수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출가 전 많은 쾌락을 누렸음에도 깨달음을얻지 못했고, 육 년간의 고행으로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지요. 그래서 중도 수행을 하기로 하신 겁니다. 이 자리에 계신 수행자들께서는 스스로 한 번 물어 보세요. ‘나는 고행주의자인가, 쾌락주의자인가, 중도수행자인가?’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부처님 고행상처럼 삐쩍 마르지 않았으니  고행주의자는 아닌 것 같네요? 쾌락주의자들은 지나치게 이완되어 있어서 잠을 많이 자게 됩니다. 그렇게 수행하면 매번 잠에 빠지게 되고 집중이 안 되겠지요. 하지만 자신을 너무 몰아치는 것도 좋지는 않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중도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붓다께서 한 살짜리 어린 아기였을 때 정반왕을 따라 성 밖으로 경작하는 것을 구경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경작하고 있는데, 한 살짜리 어린 아기인 붓다는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아세요? 전생에 많은 공덕을 지었던 어린 붓다는 나무 아래에서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을 하였습니다. 가부좌로 앉아 초선에 들었지요.

육 년간의 고행 이후 붓다께서는 한 살 때의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초선정에 들었던 그 마음 상태가 수행으로 얻어지는 마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보리수 아래 앉아 아나빠나사티를 통해 초선정에서부터 사선정 (四禪定)까지 들었습니다. 붓다께서도 사마타를 통한 선정수행을 하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선정수행이 힘들다고 하지만, 붓다께서도 선정수행을 하셨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그리고나서 붓다께서는 까시나를 이용해 팔선정 (八禪定)까지 들었습니다. 아나빠나사티로는 사선정까지 들 수 있고, 팔선정에 들기 위해서는 까시나를 이용해야 합니다. 이를 samapati라고 합니다.

팔선정까지 드신 후, 붓다께서는 신통력을 이용해 범천으로부터 지옥까지 많은 중생의 전생을 보았습니다. 한밤중까지 천안통으로 보셨는데, 이는 오로지 붓다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안팎으로 명색을 관하는데 천안통은 매우 중요한데, 수행이 높았던 붓다의 제자 중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신통력으로는 보고 싶은 범위를 결정하면 그 만큼 볼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의 지혜와 고도의 집중력으로 어느 누구도 얻지 못했던 고도의 지혜를 붓다께서는 얻으신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범천부터 지옥까지 중생의 전생을 보시면서 연기 (緣起)를 보시게 되었고, 한밤중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연기를 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새벽에 드디어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과를 성취한 붓다가 되셨지요 (성도). 아라한과를 성취한 후에도 원인과 결과를 보는 연기를 관하셨고, 붓다의 전신에서는 사방으로 빛이 나왔습니다. 깨달음을 얻으신 후, 붓다께서는 일곱 장소에서 칠일 동안씩 총 49일간을 옮기시며 수행을 계속 하셨지요.

그리고나서 붓다께서는 깊이 숙고하셨습니다. 수행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사람들에게는 욕망이 너무 많아 수행을 가르치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 때 범신이 붓다의 마음을 알고 내려와, 붓다께 예를 표하고 어떤 이들은 공덕을 지어 선근이므로 붓다의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청하였습니다. 이에 붓다께서 바라나시에서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수행을 가르치시게 된 것이지요. 이것이 지난 번 법문에서 말씀드린 초전법륜 내용이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기억나시지요?

초전법륜때 붓다께서는 사성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성제는 고성제 (dukkhasacca, 苦聖諦), 집성제 (samudyasacca, 集聖諦), 멸성제 (ariyasacca, 滅聖諦), 도성제 (maggasacca, 道聖諦)입니다. 첫 번째는 고 ()인데요, 고는 무엇일까요? 붓다께서는 초전법륜경에서 오온 (五蘊)이 고라 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예를 들어 사리불존자나 목련존자에게는 명색 (namarupa, 名色)을 바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초전법륜의 대상인 다섯 비구에게는 명색을 바로 가르치시지 않고 오온으로 가르치셨지요. 오온(panca kandha, 五蘊)에는

   (rupa, )

   (vedana, )

   (sanna, )

   (sankhara, )

   (vinnana, )

 

이 있습니다. 오온 중의 색온(rupa kandha)은 명색으로 말할 때의 색과 동일한 것으로서, 물질 작용을 말합니다. 오온 중 나머지 네 가지인 수, , , 식은 명색으로 말할 때 명에 해당하며, 정신 작용을 일컫습니다. 우리의 몸은 물질 작용으로서 볼 수 있고, 마음은 정신 작용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느낌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요, 강한 집중의 힘을 통해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명색을 보기 전에 계 (sila), (Samadhi)이 필요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계와 정이 충분해야만 명색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숙성하기 때문입니다. 팔정도는 바로 이러한 계, , 혜를 이루는 방법입니다. 계는 첫날 법문에서 말씀드렸던 바른 말 (정어), 바른 행위 (정업), 바른 생계 (정명)입니다. 그리고 지금 수행자들께서 수행하는 바로 이것이 초전법륜경에 나오는 것과 같은 정 (Samadhi)을 닦는 것입니다.

정을 개발하기 위한 40가지 명상 주제를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시나요? 그 중에서 어떤 것이든 하나만 선택하십시오. 아나빠나사티, 까시나, 자애관, 백골관, 부정관 등 어떤 것이든 한 개의 주제를 선택하세요. 예를 들어 아나빠나사티의 경우에는 명상 주제가 호흡입니다. 호흡을 기억하고, 호흡의 본질을 보도록 합니다. 콧구멍 주위에서 일어나는 호흡을 계속 관찰합니다. 호흡을 느끼는 것이 쉬운가요, 어려운가요? 콧구멍 언저리에서 호흡을 느끼되, 잠에 빠지지 않도록 하세요. 들고 나는 호흡을 계속 주시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호흡을 자세히 분석하려고 하는 것이 마음챙김 (sati, 正念)입니다.

백골을 대상으로 하는 명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백골의 이미지를 명확하게 떠 올린 후, 계속 관찰하고 기억합니다. 이렇게 할 때 바른 알아차림 (sati, 正念)이 됩니다. 수행자께서 명상 주제를 놓치고 마음이 대상 밖으로 나가 있을 때는 정념의 상태가 아닙니다. 다른 명상 주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명상 주제를 계속 기억하고 주시합니다. 이렇게 대상을 계속 기억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노력 (viriya, 정진)입니다. 그 때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되고, 집중력이 증진되지요.

이렇게 집중력이 증진되면 호흡이 점점 부드러워지고 미세하게 됩니다.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호흡이 미세해지지 않지요. 호흡이 아주 미세해지면 어느 순간 호흡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 때 호흡을 기다리면서 약간 의도적으로 호흡을 하면, 호흡이 다시 돌아옵니다. , 주의할 것은 너무 힘을 들여 호흡해서는 안 됩니다. 너무 힘을 들이면 호흡이 빨라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 호흡이 닿는 곳에도 너무 많은 주의를 두지 마세요. 그저 콧구멍 언저리에 주의를 두고 호흡을 느끼면서 공기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호흡이 부드럽고 미세해지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몸도 편해 집니다.

이렇게 호흡이 미세해지면 신체 감각이 아주 편하고 부드러워지므로, 많은 수행자들이 몸의 감각으로 주의가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몸의 감각으로 주의가 가게 되면 바왕가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바왕가에 떨어진다는 것은 호흡을 명상 주제로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며, 일종의 잠을 자는 것처럼 편한 상태입니다. 이런 이유로 호흡이 아주 편하고 미세해질 때는 약간 의도적으로 호흡을 하여서 주의를 다시 호흡으로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 몸이 편안해지고, 니밋따를 볼 수 있게 됩니다.

니밋따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니밋따는 몸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습니다. 니밋따는 집중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집중의 표상이라고 합니다. 호흡이 미세해지면서 몸과 마음이 편해지고 가벼워지면 콧구멍 주변에서 니밋따가 나타납니다. 그렇기에 코 앞이나 코 옆에서 나타난다고 하지요. 니밋따에는 세 단계가 있는데요. 첫 단계는 노란색, 파란색, 보라색 등의 뿌연 색깔이 나타납니다. 이런 단계에서는 니밋따로 집중을 옮기지 말고 호흡을 계속 주시합니다. 그러면 니밋따가 하얀색으로 변하는데, 그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니밋따가 하얀색으로 나타날 때는 창문의 빛과 헷갈려서 눈을 뜨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 때 눈을 뜨지 마세요. 니밋따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 때에도 계속 호흡에 집중을 하면 니밋따가 밝고 투명하고 작게 됩니다. 마치 다이아몬드나 별, 수정처럼 밝게 빛나는 모습이며 코 바로 앞에 와서 붙게 됩니다. 이런 상태의 니밋따가 5~10분 정도 지속되면 호흡에서 니밋따로 집중의 대상을 바꿉니다. 이 때 니밋따를 그저 바라봅니다. 니밋따를 통과해서 보게 되면 허공으로 주의가 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마음 속으로 니밋따, 니밋따라고 마음 속으로 계속 숙고합니다.

10분 정도 행복한 기분이 지속되면 희열 (piti)과 행복감 (sukkha)을 느끼게 되면서 몸의 통증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됩니다. 이 때 니밋따와 마음이 하나가 되고, 천천히 초선에 들게 됩니다. 그 때 선정의 다섯 가지 요소가 심장토대에서 일어 납니다. 아나빠나사티에서 선정이라는 것은 니밋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초선의 다섯 가지 요소가 있는데요. 첫 째는 전향 (Vitakka, 轉向)은 니밋따에 마음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졸리세요? 지루하세요? 둘 째는 반조 (Vicara, 返照)인데 니밋따에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선정의 요소는 희열 (piti, 喜悅)이고, 선정에 들었을 때 이완되고 행복해지는 느낌입니다. 희열은 마음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네 번째 요소인 행복 (sukha, 幸福)은 대부분 희열과 함께 나타납니다. 어떤 분들은 희열과 행복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요?

예를 들어 어렸을 때 여러분에게 누군가 아이스크림을 가져 온다고 생각해 볼까요?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느낌이 있겠지요? 이것이 piti입니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행복한 느낌이 점차 가라앉으면서 차분한 행복감이 오겠지요? 그것이 sukha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니밋따를 처음 볼 때 좋다, 행복하다라고 느끼는 것이 piti이고, 점차 차분해지면서 sukha가 나타나지요.

이러한 때에는 마음이 명상 주제에 붙어 있어서 다른 곳으로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니밋따를 대상으로 선정이 일어날 때는 선정의 다섯 가지 요소가 한 개, 혹은 두 개, 혹은 세 개, 혹은 다섯 개가 한 번에 일어 납니다. 그러나 선정에 들었을 때는 선정의 어떤 요소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하지 마세요. 선정에 들었다 나와서 심장토대에 기반해서 어떤 요소가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확인한 후에야 초선에 들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초선부터 사선정까지 수행할 수 있겠지요. 여러분께서 들었다시피 초선에 드는 것은 아주 쉽겠지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호흡만 계속 기억하면 초선에 들 수 있습니다. 붓다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은 이처럼 아주 명확하지요.

이 모든 것은 법 (Dhamma, )을 수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법에 대한 이론적 이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셨지요. 전법 기간 동안 붓다는 다른 종교에 대해 비판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지요. 35세부터 80세까지 45년간 설하신 내용을 법이라고 합니다. 법은 이론으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익혀야 합니다. 수행을 통해 선정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이론만으로 선정을 아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위빠사나도 마찬가지지요.

붓다 열반 후 620년 이후에 예루살렘에서 예수께서 탄생하셨지요. 또 붓다 열반 후 1170년이 지나서 마호메드가 탄생하셨지요. 힌두교의 역사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지요. 불교는 2600년이 되었고, 전법(傳法)의 역사가 아주 명확합니다. 세계적인 종교를 꼽자면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유대교 등 네 다섯개로 꼽을 수 있겠지요. 모든 종교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 째로는 창시자에 대한 믿음, 둘 째로는 예경이고, 세 번째로는 무엇일까요? 셋 째로는 이것을 원합니다, 저것을 원합니다하는 기도가 있겠지요. 원하는 신께 공양물을 올리고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고 기도를 하지요. 한국에서도 그런가요?

모든 종교에 이런 세 가지가 공통인데요. 그러나 법에는 또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법은 배우고, 수행하고, 깨닫는 세 단계가 필요합니다. 요즘 유럽이나 미국 등 서양에서는 기독교도들도 명상을 배우고 수행하고자 하지요. 인도네시아에서 수행을 지도할 때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와서 명상을 배우고 싶어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국이지요? 그런데도 한 번에 2500 ~ 3000명이 와서 법문을 듣고, 라디오에서는 전국으로 방송을 했었습니다. 이것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사람들이 수행을 하고자 하는 이유가 명상을 통해 마음의 행복감, 평화로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붓다께서 법을 여러 곳에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지요.

불교도로서 우리는 아주 복이 많습니다. 우리는 붓다의 전생이나 수행 이야기, 법도 알기 때문에 수행하는 것이 쉽습니다. 수행자들께서는 불법승 삼보(三寶)에 대한 믿음과, 다섯가지 조절기능 (五根)도 필요합니다.  

 

   믿음 (saddha, )

   정진 (viriya, 精進)

   마음챙김 (sati, )

   삼매 (Samadhi, )

   지혜 (panna, )

    

이러한 다섯가지 조절기능은 서로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균형을 깨는 것을 다섯가지 장애(nivarana, 五障碍)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감각적 욕망 (kamacchanda)

   악의 (byapada)

   해태와 혼침 (thina middha)

   들뜸과 후회 (uddhacca kukkucca)

   의심 (vicikiccha)

 

수행자 여러분은 다섯가지 장애와 싸우는 전쟁 중입니다. 우리의 첫 번째 전쟁은 세상과의 전쟁인데, 지금은 번뇌와의 전쟁 중이지요? 번뇌와 싸워 이기는 것은 어렵습니다. 해태와 혼침이 있으면 잠이 계속 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 때 나는 명상하러 갈거야라는 강한 결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통제해야 하지요. 이러한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면 번뇌가 수행자 여러분을 잡아 먹겠지요.

이번 집중수행 기간 동안 반드시 선정에 들겠다는 강한 결심을 통해 마지막 장애인 의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들을 보세요. 그 분들은 강한 결심을 한 분들이고, 어느 누구도 게으른 사람은 없지요?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 아시지요? 그 분 얘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처칠이 해군제독이었을 때, 남아프리카를 놓고 유럽의 한 국가와 전쟁을 해서 영국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처칠이 수상이 되었을 때 영국은 1차 세계대전에서 지게 되었고, 국회에서 처칠의 위상과 발언권이 떨어졌지요. 사람들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처칠은 나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것이다라는 편지를 늘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동안 많은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그 동안 처칠은 해외정세를 늘 살폈고, 독일에서 이상한 조짐을 발견했지요. 독일에서 군인을 포함한 군비가 증강되는 것을 본 것이지요. 영국 국회에서 처칠이 독일의 병력증강에 대해 얘기하면서 어느날인가 독일이 런던에 폭탄을 투하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지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지요. 그저 처칠더러 전쟁광이라고 할 뿐이었지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에서 런던으로 폭탄을 발사한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고, 처칠이 말한 대로 된 것에 더욱 놀랬지요.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은 여러분도 아시지요? 영국과 미국, 러시아가 연합해서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게 이겼지요.

그 후 80세가 넘은 처칠이 영국의 유명한 학교인 이튼칼리지에서 초청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학생과 선생님들이 강당에 모여서 처칠을 기다렸습니다. 처칠은 1차 세계대전부터 쓰던 낡은 중절모 차림으로 지팡이을 짚고 나타났습니다. 노신사가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세요? 처칠이 단상에 올라 지팡이와 중절모를 벗어서 옆에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얘기가 나올까?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얘기를 들을 수 있겠지라는 기대로 기다렸지요.

처칠은 완전히 집중되고 편안한 상태였습니다. 입을 열고 천천히 말했습니다. “절대,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이 말만 마치고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이 문장은 아주 유명하답니다.

이 짧은 문장에는 처칠의 인생이 녹아 있는 것이지요. 처칠은 자신의 인생에서 늘 노력했지요. 1차 세계대전에서 처칠이 포기했다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을 것이고 처칠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겠지요. 이러한 연설을 들은 학생들은 대단히 만족했답니다.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여섯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불만이 많습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야 하는거야? 빨리 자야 하는데 법문이 왜 이렇게 길어지는 거지?’ 라는 등 불평거리 투성이지요. 배가 부를 때도, 배가 고플 때도 게으른 사람들은 이유를 댑니다. 날씨가 춥거나 더운 것도 이유를 대면서 게으름을 피웁니다. 이 자리에 계신 수행자들은 게으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여러분을 관찰했는데요, 절대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마세요. 그리고 절대, 절대, 절대, 절대 명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결심을 강하게 하세요. 바깥의 일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명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결심하세요. 질문이 있으면 인터뷰 시간에 무엇이든 물으시고요. 오늘 법문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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